[詩] 내안의

공무도하가 / 이현승

그믐애 2011. 6. 1. 16:43

 

공무도하가 
 
이현승

 

 

 

건너지 못할 것은 다 강이라는 생각,
그러므로 지천으로 널린 것이 강이다
하품하다 흘린 눈물처럼, 슬픔이란
미천한 내가
미천한 그대의 눈동자를 마주할 때
보이지 않게 흐르는 강
울컥 물비린내가 나는 강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면서도
어쩐지 실패했다는 느낌
나는 헤어질 준비를 다 끝낸 사람처럼
자꾸 허탈하다 그러므로
최대한 밀착된 거리에서 만나고 있다는 거
그건 어쩜 그대를 볼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하여 기꺼이 나는 방종했다는 걸
거리에서 만나는 저 사내
거주지불명의 저 사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알았다
앞을 보면서 그러나 아무 것도 보지 않는
그 눈빛 앞에서 나는 변방의 곽리자고처럼
또 백수광부의 처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대로변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사내여
소주를 마시며 행려도 벗어놓고 구걸도 벗어놓고
사내는 길 건너를 망연히 보고 있다
노상에서 노천에서
끝없이 이어진 사내의 행려가
지금 사내를 내려놓으려는듯
강심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사람처럼
가지런히 신발을 벗었다


길 건너에 있는 사내
강 건너에 있는 사내
물수제비처럼 물에 잠길 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