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리(萬水里)에 봄비가 내리면 좋았다 장독대 감나무잎 봄기운이 깔리면 밤나무골 서마지기 개답논엔 부쩍 키가 자란 독새풀이 한창이고 일년농사 지어봐야 아들놈 육성회비 낼 돈이 없어 홧김에 막걸리 사발만 축내시던 아버지 아 우리들의 아버지, - 억새풀처럼 독새풀처럼 억세게 살아야 쓴다 당신의 헐거운 다짐은 당산나무 그늘 곰방담뱃대속으로 한번 빨려 들어간 뒤로 감감 무소식이고 땅뺏기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살구나무밑 희미한 유년이 자갈마당 신작로에 콘크리트로 싸발리던 날 성긴 가슴이 두엄간 퇴비로 푹 삭히던 날 아득한 곰방담뱃대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아 우리들의 할아버지 걸어나오시고 - 아가야, 억새풀처럼 독새풀처럼 억세게 살아야 쓴다 만수리萬水里에 꽃비 내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