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만수리 / 양형근

그믐애 2011. 9. 19. 12:55

 

 

 

 

만수리 (萬水里)

                              ㅡ 양 형 근 ㅡ

 

만수리(萬水里)에 봄비가 내리면 좋았다
장독대 감나무잎
봄기운이 깔리면
밤나무골 서마지기 개답논엔
부쩍 키가 자란 독새풀이 한창이고
일년농사 지어봐야
아들놈 육성회비 낼 돈이 없어
홧김에 막걸리 사발만 축내시던
아버지 아 우리들의 아버지,
- 억새풀처럼 독새풀처럼 억세게 살아야 쓴다
당신의 헐거운 다짐은
당산나무 그늘 곰방담뱃대속으로
한번 빨려 들어간 뒤로
감감 무소식이고
땅뺏기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던
살구나무밑 희미한 유년이
자갈마당 신작로에
콘크리트로 싸발리던 날
성긴 가슴이 두엄간 퇴비로 푹 삭히던 날
아득한 곰방담뱃대에서
아버지의 아버지
아 우리들의 할아버지 걸어나오시고
- 아가야, 억새풀처럼 독새풀처럼 억세게 살아야 쓴다
만수리萬水里에 꽃비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