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걸인 / 정호승

그믐애 2012. 9. 13. 12:44

 

걸인

 

정호승

 

나는 그대의 불전함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배고픈 불전함

동전 한닢 떨어지는 소리가 천년이 걸린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아도

내 손이 먼저 무량수전 마룻바닥을 기어가듯

천년을 기어가

그대에게 적선의 손을 내미나니

뿌리치지 마시라 부디

무량수전이 어디 부석사에만 있었던가

우리가 흔들리며 타고 가는 지하철

여기가 바로 무량수전이 아니던가

나는 그대의 불전함

다 닳은 타이어 조각을 대고 꿈틀꿈틀 무릎도 없이

지하철 바닥을 기어가는 가난한 불전함

동전 몇닢 떨어지는 소리가

또 천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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