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폐병장이 내 사내 / 허수경
그믐애
2013. 3. 7. 17:26
폐병장이 내 사내
- 허수경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
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 주고 싶었네
산 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 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 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
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 뿐이랴.
시인 소개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1987년 경상대 국문과 졸업
『실천문학』에 [땡볕]등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1988년 첫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간행.
1992년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간행.
2001년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