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드러지다 2/ 박이화
간밤
그 거친 비바람에도
꽃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리어 화사하다
아직 때가 안 되어서란다
수분(受粉)이 안 된 꽃은
젖 먹은 힘을 다해
그러니까 죽을힘을 다해
악착같이 가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단다
그러나 으스러질 듯 나를 껴안고 있던 그대 팔이
잠들면서 맥없이 풀어지듯
때가 되면 저 난만한 꽃잎도 시나브로 가지를 떠난단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눈꺼풀 스르르 내려앉는 그 천만근의 힘으로
때가 되어 떠나는 일 그러하듯
때가 되어 꽃피는 힘 그 또한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때가 되어
그대 앞에 만판 흐드러진
내 마흔 봄날도 분명 그러했을 터
- 시집『흐드러지다』(천년의 시작,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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