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난 꼬막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을 열어준 사람은 오촌당숙이시고
끝까지 뒤를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때려준 사람은 부산 고모님이시고
나하고 엄마, 길보다 낮은 집에 남겨두고
군대에 간 사람은 우리 아버지시고
젖도 안 떨어진 나 안고 '천신호'를 타고, 멀미를 타고 가덕섬으로 돌아온 사람은 할머니시고
빨아 먹을 사람 없어지자 젖이 넘쳐나
염색공장 변소 바닥이 하얗도록 짜낸 사람은 다시 우리 어머니시고
젖 대신 감성돔 낚아서 죽 끓여 나를 먹인 사람은
큰아버지시고
무엇을 씹을 때부터
개펄에서 털 난 꼬막 캐와서 먹인 사람은 큰어머니시고
그렇게 저녁마다 차나락 볏잎으로 큰아버지 주먹만한 털 난 꼬막 구워주신 사람
큰어머니시고
한 번씩 나 안아보러 오는 우리 엄마에게
덕석에서 늦은 저녁상을 받으며
욕 잘하는 우리 큰어머니
니 털 난 꼬막으로 나왔다고 다 니 새끼냐 하셨을 것 같고
우리 엄마 울고
우리 엄마 울고
털 난 꼬막 목젖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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