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추자도에서 / 김선태

그믐애 2016. 12. 1. 18:06

추자도에서

                                       ㅡ 김선태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춥고 쓸쓸할 때

깨끗한 외로움 하나만을 데불고 추자도에 가리

바닷가에 조개껍질처럼 엎어진 민박집에 들어

아무도 몰래 꼭꼭 숨어 한철을 견디리

밤낮으로 바람소리, 파도소리만 듣다 질리면

혼자서 사무치는 객수감에 몸서리치리.


나라 안에서 제일 힘센 바람과

제일 사나운 파도가 산다는 추자바다

거기에 풍랑과 맞서는 섬들이 점점이 놓여 있지

그래서 추자도의 옛 이름은 후풍도候風島

모진 풍랑을 피해 숨어들기 좋은 곳

배도 사람도 바닷새도 물고기도

모두들 이곳을 기항지 삼아 숨을 골랐다지

때로는 유배객들이 제주에 이르기 전

이곳에서 갓을 벗고 절명하기도 했으니

저 눈썹처럼 떠 있는 마흔 두 개의 섬들이

어쩌면 그들의 억울한 영혼은 아니냐.

         몽돌들이 자갈자갈 우는 짝지에 앉아


          춥고 눅눅한 마음을 널어 말리며 바다를 본다

오늘도 파도는 기슭을 하얗게 물어뜯지만

섬은 끝끝내 견고한 자존을 포기하지 않는다

굴복하지 않은 것들이 섬들로 떠 있는 추자바다

나도 그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근 섬이 되어

깨끗한 외로움 하나를 담금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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