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아버지 생각 외 / 하종오

그믐애 2011. 4. 4. 17:52


[아버지 생각]

 저를 낳은 고향에서 늙으시는 아버지
저도 타향에서 자식 거느린 아비가 되었습니다.
어린 것 품에 안고 봄 햇살 속에 서면
자식 가슴에 맞대어야 제 가슴이 맑아지고
자식 속에 스며들어야 제 속이 깨끗해지니
어디서나 사람들이 넉넉하게 보이고
아버지 늙으신 뜻도 알겠습니다.
늙으셨건만
제게 늘 어린 마음이셨던 아버지
저는 커다란 산을 뛰어넘으면서도
시든 풀꽃 앞에서는 울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향 쪽 하늘 더듬으며 제가 늙어갈 적엔
제 자식은 다른 타향에서 아비 되어
이리 생각하리라 믿습니다.아버지
사랑합니다



 

[지 살자고 하는 짓]  
                      
밭고랑에서 삐긋해 금 간 다리뼈 겨우 붙으니
늙은 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마당가로 가
참나무 아래서 도토리 주워 껍질 까다가
막내아들이 쉬라고 하면 내뱉었다
놔둬라이, 뼈에 숭숭 드나드는 바람 달래는 거여
장가 못 든 쉰줄 막내아들이
홀로 된 여든줄 어머니 모시고 사는데
막내아들이 검정콩 베어다 마당 한복판에 쌓아놓으면
늙은 어머니는 참나무 가지로 타닥타닥 두드려 털고
막내아들이 멀리 튄 콩 주워오면 소리질렀다
놔둬라이, 한구석에 묻혀서 명년까지 있고 싶은 거여
막내아들이 갈아입힌 속옷에 새물내 나서
늙은 어머니는 코 킁킁거리며 새물새물 웃다가
막내아들이 겉옷에 붙은 풀씨 뜯어내면 중얼거렸다
놔둬라이, 혼자 못 가는 곳에 같이 가자는 거 아니겠냐
늙은 어머니가 해거름에 집 안으로 들 적에
이웃집 수캐가 어슬렁어슬렁 대문 먼저 넘어서
암캐에게 올라타려고 낑낑거리는 꼴이 민망해서
막내아들이 콩줄기 거머쥐고 후려치면 말렸다
놔둬라이, 지들 딴엔 찬 밤 길어지니 옆구리 시린 게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다들 지 살자고 하는 짓이여

 

 

[아비는 입으로 농사짓고 아들놈은 손으로 농사짓다 ]


장에 가는 차비 아낄 요량으로
남의 차 얻어 탔다가 도랑에 처박히어
부러진 손모가지 기브스한 아비는
장터에서 개인택시 하는 아들놈 불러들였다

아비는 웃둑으로 가서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차는 똑바로 몰면서 경운기는 삐뚜름하게 모냐?
길 가는 운전대 따로 논 가는 운전대 따로 있냐?
아비는 아랫둑으로 가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길바닥에선 물 피해 길 빨리 달려도 되지만
논바닥에선 물 흘러가게 길 내며 천천히 가야 돼.

아들놈 차값 본전 뽑으려면 경기 잘 타야 하는데
꽃놀이 패 몰려올 땐 불러서 모판 찌게 하고
물놀이 패 몰려올 땐 불려서 농약 치게 하고
단풍놀이 패 몰려들 땐 불러서 벼 베게 했다

아비는 짚단 묶으며 사근사근 말했다
벼가 다 익으니 내 손모가지도 다 붙었다야.
네 근력이 아주 세니 땅심도 더 세졌다야.
아비는 나락 포대 세며 사근사근 말했다
길바닥에서 하는 손님 장사가 재밌겠냐?
논바닥에서 하는 곡식 장사가 재밌겠냐?

논일하는 동안 영업 못한 아들놈은 일당 계산해
든손에 쌀 찧어 택시로 장에 실어 날랐다
결국 반타작밖에 못한 셈이지만
아비는 빈들 바라보고 삥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