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여 승 / 백석

그믐애 2011. 5. 27. 13:10

 

 

 

 

 

 

 
 

- 여 승(女僧)-

                             백    석

여승(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낮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山)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작가소개]
백석(白石,1912~ ?) 평북 정주(定州)출생.
오산보통고등학교를 거쳐 일본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백석은 어느 문학동인이나 유파(流派)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가 최초로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그 母와 아들>이 당선되면서 부터인데 이것은 소설이었다.
그가 시인으로서그의 위치를 분명히 알린 것은 1935년 8월,
조선일보에<정주성(定州城)>을 발표하면서이다.
이후 그는 1년도 되지 않아 그의 시집<사슴>(1936)을 조광인쇄주식회사
에서 발간해 낸다. 이때의 발기인으로는 김기림.이원조 등이
참가하고 있다. 그는 직업을 여러 번 전전하는데, 1934년에는
조선일보사 계열 잡지인 <여성>지 편집에 참여하다가 <사슴>을
내던 해인 1936년에는 함경남도 함흥에 있는 영생여고보의 교사로
재직한다. 그러다가 1938년, 서울에 와서 <여성>지 편집에 다시
관여하다가 1939년, 급기야는 만주로 이민을 떠난다.
그 후 만주에 계속 기기하다가 해방이 되자 그의 고향 정주로
옮겨간다. 대표작으로 <여우난골족(族)>,<여승>,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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