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다음 이미지)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군말] 아버지는 평생 흙을 일구며 살아 오셨다
무논에 들어가 논둑을 만드시다 해가 저물면 진흙 뭍은 삽을 강에 나가 씻었을 거다
자신의 배잠방이에 뭍은 흙과 함께....
그리고 저문 강변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며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지켜 보았을 터다
쇠삽이 반토막이 되도록 뼈빠지게 일해 보았자
찢어지는 가난이 쉬이 물러가지 않을 거라는 현실앞에 절망을 했을거다
한때 젊은 날엔 암자에 틀여 박혀 도회로의 진출을 꿈꿔 보았고
그도 저도 아닌 다음에야 고향에서 평생 흙을 일구리라 체념하셨을 터이지만
호롱불 밑에서 몽당 연필 침 뭍혀가며 가난하게 공부시켰어도 매 학기마다 우등상을
척척 받아오는 용한 자식을 지켜보며 비록 당신의 꿈은 흙에 뭍었지만 자식 농사에 새희망을 보았을터
때때로 고단한 삶을 십리길 장터로 나가 술로 한풀이 하시고
해저문 신작로길을 포플러 나무처럼 휘청거리며 걸어 오시지 않았나
"백호야 훨훨 날아라" "백호야 훨훨 날아라"
마을 어귀를 접어드시며 동네방네 불러재끼는 아버지 노래 소리에 어머니는 동네 창피하니 얼른 모셔오라 재촉,
동구밖까지 뛰어 나가 "아부지 와이리 술을 많이 드셨는기요" 구박이라도 할라치면
두팔을 활짝 펼처 내 작은 몸둥이를 꼬옥 안아주시며
" 그래 아비가 오늘 친구를 만나 기분 좋게 한잔 했다" 허허허 호탕하게 웃으시며 집으로 따라 오셨어도
이어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울분과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급기야 큰집에서 분가때 갖고 나왔다는 아이 키보다 깊고 크다랗던 옹기를
도끼로 산산 조각 깨부숨으로써 어머니의 염려와 잔소리를 침묵케 하셨던 당신
강물과 함께 세월도 흘러 이제 팔순에 접어드신 아버지는 그때 못다한 꿈을 펼치시기라도 하시려는지
매일 하루의 절반을 독서로 소일하고 계신단다.
황성 공원 김유신 장군 동상 밑 빨간 포장 마차 소주 한병을 바에 남겨둔 양주인양
운동을 나가시거나 도서관에 들려 나오실때면 어김없이 한잔씩 드시면서....
아버지 내내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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