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젠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 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 장
박형준(朴瑩浚) 시인
1966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와 동국대에서 강의 중이다.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구의 힘〉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는『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 하련다』(1994) 『빵 냄새를 풍기는 거울』(1997)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2002) 『춤』
(2005)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2011)가 있고,
산문집으로 『저녁의 무늬』(2003) 『아름다움에 허기지다』(2007)가 있다.
제15회 동서 문학상, 제10회 현대시학 작품상, 제 24회 소월시문학상, 웹진 시인광장 선정 제2회 '올해의 좋은시' 賞 , 제 1회 꿈과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동료 문인들이 2015년 최고의 詩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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