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접시 / 이정록
시골 어머니를 위해 누님은 에어컨과 스카이를 달아드리고 아우는 텔레비전과 청소기를 사드렸는데, 맏아들인 나는 병아리눈곱만큼 나오는 전기세와 벙어리 전화세 내드리는 게 전부다
그런데 누님은 누님이시다
누님이 달아드린 그 위성 케이블이 치매 걸린 광줄댁, 풍 맞은 대밭머리 아주머니, 수다와 버캐가 전문인 박달자 할머니까지, 동네과부들을 어머니 방에 다 모이게 하는 것이다. 모두 모여 벌건 대낮에 훌러덩 식식거리는 영화를 꼴깍꼴깍 보고 계시다. 이 집 텔레비는 원제 저리 다 벗겨 놨댜? 어이쿠, 어이쿠, 저 양코배기들 방아 찧는 것 좀 봐. 풍 맞은 몸으로 흉내 내려니 반쪽만 에로배우다. 굳은 한 쪽 팔다리는, 주책 좀 그만 떨라니까! 젊어 떠난 서방이 엉거주춤 옷섶 추슬러주는 듯하다. 풍 맞고야 앞서 간 남편과 몸을 섞다니,
누님은 역시 누님이시다
함박꽃 틀니들, 공옥진 초청공연이 따로 없다. 웃음바다에 둥둥둥 떠가는 치매의 복사꽃잎들, 떠돌이 약장수에게 약 들여 놓는 일도 없어졌다. 이제 나는 노파 전용 영화관의 맏아들이 된 것이다. 돌아가시기도 전에 벌써 스카이 라이프이라니! 짠하기도 하지만, 누님은 역시 누님이시다. 녹슨 처마 끝 천국의 접시여. 하느님도 세상 재미가 쏠쏠하신가? 새털구름 불콰한 하늘 접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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