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내려간 어느날이였던가
산행길 초피 열매가 주홍빛으로 곱게 익어 있길레
추수가 끝나가는 이맘때가 추어탕이 제철이였구나
소시적 아버지,
봉답[奉畓]에 나락 비낼 때면 고단한 농사일을 농주[農酒]로 달랬던가
해질녁이 되어도 무논에서 돌아오지않는 아버지, 저녁 잡수시라 어여가봐라
어둑어둑한 산길을 걸어 배웅을 갈라치면 참드시라 갖다드린 농주는 간곳없고
누우런 살찐 미꾸라지들이 양은주전자속에서 나좀 살려달라고 와글와글
먼저 내려가서 니엄마에게 추어탕 좀 끓여 놓아라하거라
난 저쪽 모탱이 나락 마자 비놓고 내려가꾸마
해는 벌써 진지 오래건만 농주 기운도 마져 떨어져야 아부지는 손에 든 낫을 내려놓으실랑가
뒤안간 호박잎 따서 덤성 덤성 썰어넣고 텃밭에 빨간고추 파란고추 따서 다대기 만들고
가마솥 뚜껑위에 초피 열매 껍질을 덕어서 손으로 곱게 비벼내시며
어여 식기전에 이번 가을 첫 추어탕 끓였으니 할머님도 같이 드시라오라 하였던가
입이 닷발이나 나와 시아도 있는데 와 내만 자꾸 심부름시키노
니는 공부도 못하는기 심부름이라도 잘해야 밥 얻어먹고 살제 퍼떡 모시고 오니라
자꾸 심부름시키니까 공부를 못하제
호호호 그라면 시야 더러 심부름 시킬테니 니는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어래이
언제이~ 내가 마 갔다 올께에~
두어 주먹 따서 추어탕 양념으로 쓸까
햇열매라야 알싸한 맛이 일품이제
옴마야 니 누꼬?
거~서 뭐하노
설마 저 독한 초피잎을 갉아 먹고 있는건 아니제?
아니나 다를까 독한 향으로 인해 초피껍질을 개울에 풀면 버들치가 기절한다고 하는데
그 나뭇잎을 갉아 먹고 사는 놈도 있네 그쟈
니 참 식성[食性]도 독특하셔^^
바로 이놈 이름이 호랑나비 애벌레 라네요
독한 잎을 갈아먹고 산다꼬 성깔도 한 성깔하는지
자기를 괴롭히면 입속에서 노란색 혀를 내밀어 아주 심한 악취를 뿜어 낸다고 합니다
운향과의 귤나무,산초나무,탱자나무,황벽나무 잎을 먹고 자라서 나비가 되면
앗싸~
호랑나비야 날아라~
그란다꼬 흥국이 옵빠처럼 술 마시고 날면 안된데이^^
지난 여름 시골집 탱자 나무 울밑 육모초 꽃잎을 희롱하던 호랑나비들이
멀리서 날아온 나비인줄 알았더니
원래 제집이 탱자나무울이였든가 봅니다
시골집엔 자식들 키워 객지로 보내고 나니 부모님이 영 적적하셨든지
호두나무는 까치에게 내어주고
탱자나무는 호랑나비에게 내어주고
부뚜막은 고양이에게 내어줘 버렸네요
이제 기력이 더 떨어지면 텃밭마져
개똥참외, 돌깨, 개불알꽃, 며느리밑앁게,도꼬마리,개똥쑥에게
내어 주겠지요
동구밖 늙은 당수나무 흔들리며 그럽디다
아둥바둥 남의 눈 찔러가며 피같이 모은 재산도
떠날때는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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