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아이야 어디서 너는 / 기형도

그믐애 2016. 1. 15. 17:35


 

 

 

 

아이야 어디서 너는

 

                           -기형도

 

 

아이야, 어디서 너는 온몸 가득 비[雨]를 적시고
왔느냐, 네 알몸 위로 수천의 江물이 흐른다. 찬
가슴팍 위로 저 世上을 向한 江물이 흐른다.

갈밭을 헤치고 왔니. 네 머리카락에 걸린 하얀 갈꽃이
누운 채로 젖어 있다. 그 갈꽃 무너지는 西山을 아비는
네 몸만큼의 짠 빗물을 뿌리며 넘어갔더란다. 아이야
아비의 그 구름을 먹고 왔느냐.

호롱을 켜려무나. 뿌옇게 몰려오는 소나기를 가득 담고
어둠 속을 흐르는, 네 눈을 켜려무나. 하늘에 실노을이
西行하고 어른거리는 불빛은 꽃을 쫓는다.

닦아도닦아도 흐르는 꽃술[花酒] 같은 네 江물.
갈꽃은 붉게붉게 익어가는데, 아이야 네 눈 가득
아비가 젖어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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