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내안의

밤새 무슨 일이 / 안상학

그믐애 2018. 2. 1. 13:51


​밤새 무슨 일이 /안상학

누굴까 
동사무소 앞 환경미화용 초대형 화분
그저께 심어놓은 꽃배추들을 
마구 뽑아 던진 이는 누구였을까
배추농사 접은 농민이었을까
뿌리 뽑힌 정리해고자의 취중 발산이었을까
무어라 말하며 죄다 뽑았을까
꽃배추 한 포기에 씨펄
꽃배추 한 포기에 개 같은
꽃배추 한 포기에 니 죽고
꽃배추 한 포기에 내 죽자, 했을까.
저런 마음이 한도를 넘으면
한강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하는 걸까
사람을 어떻게 하기도 하는 걸까
동사무소 직원들 다시 심으며 뭐라 말할까
꽃배추 한 포기에 씨펄
꽃배추 한 포기에 개 같은 놈들, 할까, 아니면
꽃배추 한 포기에 그래그래
꽃배추 한 포기에 이래라도 풀어야지, 할까
문득 꽃배추 뽑은 그 마음이 내 맘 같기도 하고
다시 심는 마음이 내 맘 같기도 한 
부끄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한 이른 아침
꽃배추들 뿌리째 널브러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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