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무슨 일이 / 안상학 ​밤새 무슨 일이 /안상학 누굴까 동사무소 앞 환경미화용 초대형 화분 그저께 심어놓은 꽃배추들을 마구 뽑아 던진 이는 누구였을까 배추농사 접은 농민이었을까 뿌리 뽑힌 정리해고자의 취중 발산이었을까 무어라 말하며 죄다 뽑았을까 꽃배추 한 포기에 씨펄 꽃배추 한 포기에 개 .. [詩] 내안의 2018.02.01
악어떼 / 원보람 악어떼 서른이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실업급여를 받았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햇빛줄기를 나눠먹었고 발끝마다 매달린 검은 노예들도 입을 벌렸다 요즘은 늘 다니던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판은 너무 많은 곳을 가리키고 신호등은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만 보내지 도시 곳곳에 설.. [詩] 내안의 2018.01.04
봄바다에서 / 박재삼 봄바다에서 - 박재삼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 [詩] 내안의 2018.01.02
옛일 /신미나 옛일 / 신미나 해마다 잊지도 않고 공양하나 저 꽃들, 보노라니 어쩌나 죽어도 너를 못 잊는다는 내 약속은 거짓이었어라 너 없이도 찢어진 살 위에 새살 돋고 밑이 젖는 내 몸 봐라 어쩌나 향불 한 올 피우지 못하고 너는 이제 강가에 던진 돌이나 되었는데 내 슬픔만으로 꽃 모가지 하나 .. [詩] 내안의 2017.10.25
그러나 석류꽃은 피고 지고 / 신미나 그러나 석류꽃은 피고 지고/ 신미나 풍문은 늘 대문 밖에서만 떠돌았다 삼복에 애 낳다 숨진 처녀애가 살았다는 집 담벼락 거기, 어금니 금가도록 아득바득 이 갈던 사랑이 있었나 끝내 숨 놓지 않으려는 핏발 터진 눈동자 있었나 알알이 탯줄 마른 애기들이 줄기 타고 살아서 돌아오는 .. [詩] 내안의 2017.10.25
정해진 이별 / 황학주 정해진 이별 황학주 그 길에 들어가는 당신을 보고 있습니다 밤늦도록 빗속에 천가죽처럼 묵직하게 처진 고목들이 줄 서 있고 그 길에 가는 자를 못 비추는 무뚝뚝한 등이 서 있습니다 헌 세상 같은 밤이 차고에 들고 얼룩이 배어 있는 이마를 나는 핸들 위에 가만히 찍습니다 짧지만 진.. [詩] 내안의 2017.07.24
물고기 그림자 - 황지우 물고기 그림자 - 황지우 맑은 물 아래 물고기는 간데없고 물고기 그림자들만 모래 바닥에 가라앉아 있네 잡아묵세, 잡아묵세, 마음이 잠깐 움직이는 사이에 물고기 그림자도 간데없네 눈 들어 대밭 속을 보니 초록 햇살을 걸러 받는 저 깊은 곳, 뭐랄까, 말하자면 어떤 神性같은 것이 거주.. [詩] 내안의 2017.06.05
입맞춤 / 허수경 입맞춤 허수경 그 양반 생각만 하모 지금도 오만간장이 다 오그라붙제 무정한 양반 아니여 유정한 시절 꽃 분분 가슴살에 꽂힌 바람 된통부를 꽃물 듣는 아린 날 눈뜨면 멀어질새 눈감으면 흩어질새 부러 감은 듯 마는 듯 다소곳 숨죽인 듯 화들짝 불에 데인 듯 떨며 떨며 천지간에 둘도 .. [詩] 내안의 2017.04.05
도둑들 / 안도현 도둑들/-안도현 생각해보면, 딱 한 번이었다 내 열두어 살쯤에 기역자 손전등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푸석하고 컴컴해진 초가집 처마 속으로 잽싸게 손을 밀어넣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내 손 끝에 닿던 물큰하고 뜨끈한 그것, 그게 잠자던 참새의 팔딱이는 심장이었는지, 깃털 .. [詩] 내안의 2017.02.28
길다방 송양 / 이기와 길다방 송 양 - 이기와 길다방 송 양을 아시나요? 어디가 끝이고 어디가 시작인지 모를 끊어졌다 이어지고 다시 돌아나가는 시골길처럼 알다가도 모를 그녀 말이에요 누구든 따뜻한 봄바람을 주문하면 스쿠터를 타고 신속 배달해 주는, 돌멩이보다 잘 굴러다니는 그녀 있잖아요 각설탕처.. [詩] 내안의 2017.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