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만원 / 박형준 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 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詩] 내안의 2016.04.25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 박정대 그 깃발, 서럽게 펄럭이는 박정대 기억의 동편 기슭에서 그녀가 빨래를 널고 있네, 하얀 빤스 한 장 기억의 빨랫줄에 걸려 함께 허공에서 펄럭이는 낡은 집 한 채 조심성 없는 바람은 창문을 마구 흔들고 가네, 그 옥탑방 사랑을 하기엔 다소 좁았어도 그 위로 펼쳐진 여름이 외상장부처럼.. [詩] 내안의 2016.03.08
솔깃 / 최재경 솔깃 / 최재경 읍내 다방이 신장개업을 하면서 마담도 새로 오고 배달하는 아가씨도 둘이나 따라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스무 개가 넘는 마을로 순식간에 번졌다 모두 솔깃하였지만, 그 놈의 체면 때문에 내놓고 좋아라 하는 눈치는 뒤로 꿍쳤다 스피커소리가 밖에서도 들리게 뽕짝으로 조.. [詩] 내안의 2016.03.03
하늘 접시 /이정록 하늘 접시 / 이정록 시골 어머니를 위해 누님은 에어컨과 스카이를 달아드리고 아우는 텔레비전과 청소기를 사드렸는데, 맏아들인 나는 병아리눈곱만큼 나오는 전기세와 벙어리 전화세 내드리는 게 전부다 그런데 누님은 누님이시다 누님이 달아드린 그 위성 케이블이 치매 걸린 광줄댁.. [詩] 내안의 2016.02.18
홍어 / 이정록 홍어 / 이정록 욕쟁이 목포홍어집 마흔 넘은 큰아들 골수암 나이만도 십사 년이다 양쪽다리 세 번 톱질했다 새우 눈으로 웃는다 개업한 지 이십팔 년 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 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 할매는 곰삭은 젓갈이다 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 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 [詩] 내안의 2016.02.18
엄니의 남자 / 이정록 엄니의 男子 / 이정록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新派延命調)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둥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 [詩] 내안의 2016.02.18
아이야 어디서 너는 / 기형도 아이야 어디서 너는 -기형도 아이야, 어디서 너는 온몸 가득 비[雨]를 적시고 왔느냐, 네 알몸 위로 수천의 江물이 흐른다. 찬 가슴팍 위로 저 世上을 向한 江물이 흐른다. 갈밭을 헤치고 왔니. 네 머리카락에 걸린 하얀 갈꽃이 누운 채로 젖어 있다. 그 갈꽃 무너지는 西山을 아비는 네 몸.. [詩] 내안의 2016.01.15
박태일 /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박태일 너희는 말 많은 자식이 되어 울산으로 부산으로 떠나고 잘 살아야지 못 먹고 못 입힌 죄로 사십 오십줄엔 재산인 양 너희를 바랬어도 자식도 자라면 남이라 조심스럽고 어제는 밤실 사돈댁이 보낸 청둥오리 피를 받으며 한 목숨 질긴 사정을 요량했다.. [詩] 내안의 2015.12.17
개 같은 사랑 / 최광임 개 같은 사랑 최광임 대로를 가로지르던 수캐 덤프트럭 밑에 섰다 휘청 앞발 꺾였다 일어서서 맞은편 내 자동차 쪽 앞서 건넌 암캐를 향하고 있다, 급정거하며 경적 울리다 유리창 밖에 개의 눈과 마주쳤다 저런 눈빛의 사내라면 나를 통째로 걸어도 좋으리라 거리의 차들 줄줄 밀리며 빵.. [詩] 내안의 2015.12.02
멀리서 빈다 /나태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않는 풀잎처럼 숨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모두 부디 아프지마.. [詩] 내안의 2015.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