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꽃 / 정호승 가을 꽃 ㅡ 정호승 ㅡ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 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 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 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 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 황국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詩] 내안의 2015.09.23
오동나무의 웃음 소리 / 김선우 오동나무의 웃음소리 / 김선우 서른 해 넘도록 연인들과 노닐 때마다 내가 조금쯤 부끄러웠던 순간은 오줌 눌 때였는데 문 밖까지 소리 들리면 어쩌나 힘 주어 졸졸 개울물 만들거나 성급하게 변기 물을 폭포수로 내리며 일 보던 것인데 마흔 넘은 여자들과 시골 산보를 하다가 오동나무 .. [詩] 내안의 2015.09.17
유방 / 문정희 유방 - 문정희 - 윗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드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을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 [詩] 내안의 2015.08.27
술국 / 함순례 술국 함순례 하루쯤 학원 좀 쉬자 하더니 내가 잠시 조는 틈을 타 사라진 아들 녀석 얼굴 뽈그족족 술 냄새 확 풍기며 돌아왔다 모든 게 죄 얽혀서 옥죄어오는 듯하다고 불안하고 두려워 미치겠다고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이튿날 아침 식탁에서 콩나물황태국 마주하더니 이럴 수 있는 거.. [詩] 내안의 2015.07.02
감포 / 함순례 감포 - 함순례 태풍이 몰아쳐도 오봉은 달린다 포구의 꽃 김양은 거센 파도 밀려오는 선창에 스쿠터를 댄다 먼 바다와 맞장 뜰 일에 눈 벌겋던 사내의 어깨가 다방커피에 녹아들다가 은근슬쩍 김양의 허벅지로 쏠린다 배들조차 서로서로 깍지 낀 채 스크럼을 짜는 폭풍전야 아가 어르듯 .. [詩] 내안의 2015.07.01
빈방 / 김사인 빈 방 / 김사인 나 이제 눕네 봄풀들은 꽃도 없이 스러지고 우리는 너무 멀리 떠나왔나 봐 저물어가는데 채독 걸린 무서운 아이들만 장다리밭에 뒹굴고 아아 꽃밭은 결딴났으니 봄날의 좋은 별과 환호하던 잎들과 묵묵히 둘러앉던 저녁 밥상 순한 이마들은 어느 처마 밑에서 울고 있는가 .. [詩] 내안의 2015.06.17
보고 싶은 오빠 / 김언희 보고 싶은 오빠 (김언희) 1 난 개하고 살아, 오빠, 터럭 한 올 없는 개, 저 번들번들한 개 하고 , 십 년도 넘었어, 난 저 개 가 신기해, 오빠, 지칠 줄 모르고 개가 되는 저 개가, 오빠, 지 칠 줄 모르고 내가 되는 나도 2 기억나, 오빠? 술만 마시면 라이터 불로 내 거웃을 태워 먹었던 거? 정말로.. [詩] 내안의 2015.05.29
털난 꼬막 / 박형권 털 난 꼬막 박형권 아버지와 어머니가 염소막에서 배꼽을 맞추고 야반도주할 때 가덕섬에서 부산 남포동에 닿는 물길을 열어준 사람은 오촌당숙이시고 끝까지 뒤를 추적하다 선창에서 포기한 사람들은 외삼촌들이시고 나 낳은 사람은 물론 어머니이시고 나 낳다가 잠에 빠져들 때 뺨을 .. [詩] 내안의 2015.04.14
참 환한 세상 / 이중기 참 환한 세상/이중기 파꽃 한 번 오지게 둥둥둥 피어난다 거두절미하고 힘찬 사내의 거시기 같다 단돈 만 원도 안 되는 원수 같은 것들이 탱탱하게 치솟는 풍경을 흘겨보던 등 굽은 늙은이 입술 묘하게 비튼다 빗장거리로 달려들어 북소리 몰고 둥둥둥둥, 북소리 물고 달려가는 저, 수여.. [詩] 내안의 2015.04.07
동편 뜰에 꽃을 풀어 / 서안나 동편 뜰에 꽃을 풀어 서안나 불타는 혀를 내밀어 우리는 사랑을 약조했다 사랑의 둘레는 늘 축축하다 첫날에는 안개를 부르고 둘째 날 동편 뜰에 꽃을 풀어 축축한 홍매화 가지를 셋째 날 이승 밖으로 내밀기도 했다 세 번 절하고 세 번 운다 울어도 눈물이 흐르지 않을 때 살아있어도 귀.. [詩] 내안의 2015.02.06